I. 현대과학의 시초는 17세기에 있었던 과학혁명의 시대로서 발생지는 유럽이다. 동양도 과학기술이라고 여겨질 수 있는 전통적 기반이 있었으며 실제로 종이, 화약, 나침반, 자기, 비단 등과 같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제조기술에 기반을 둔 산물들이 처음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증기기관으로 대표되는 산업혁명과 같은 정도의 혁명적 발전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먼저 제조업을 일구었음에도 퀀텀 점프를 이루지 못한 원인은 무엇일까?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대상을 탐구하는 방법론, 즉 연구의 효율성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VI. 현대과학은 아직도 환원론적 접근 방법이 주를 이루고 있다. 달리 말하여 연구 대상을 기계적 존재로 이해하고 정적인 대상으로 보는 것과 같다. 이러한 개념에 기초를 둔 분류와 방법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분야가 특히 미생물 분야이다. 놀랍게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미생물은 그 종류가 매우 많으며 인간은 고작 2 % 정도 밖에 그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머지는 어떤 종인지, 어떻게 배양을 해야 하는지, 유전자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이다. 이러한 상황이어서 미생물에 대한 연구와 응용은 여전히 환원론적 접근에 머물고 있으며 자연계에서 발견된 미생물들은 일차적으로 특정 미생물을 분리, 배양하여 동정하는 절차를 거치게 된다. 이 방법으로 군락을 구성하는 미생물 개체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는 있어도 군락 전체에 대한 종합적인 지식은 얻을 수가 없다. 여러 종류의 미생물들이 공존하면서 군락을 이룰 때 어떤 새로운 기능이 있는지 등에 대한 정보를 확보하려면 군락 자체 그대로 두고 연구를 하여야 하는데 환원론적 방법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VII. 자연계에서 발견되는 미생물들은 수천수만 종의 미생물들이 서로 균형을 이루면서 공존하는 복합미생물의 형태로 존재한다.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예는 인체의 장에 있는 세균총(microbiome)을 들 수 있다. 공존하는 미생물 무리는 생명체와 같은 특정 형상을 이루지 않았다뿐이지 나름대로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어 하나의 생명체와 유사하다. 따라서 복합미생물은 단일 미생물종 보다 강력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어 주위 환경의 변화에 잘 적응하고 전체적인 효능도 강력하다. 이와 같은 특성에 주목한 학자들은 최근 공존하는 상태의 세균총을 그 상태에 따라 “균형”(symbiosis)과 “불균형”(dybiosis)으로 나누어 부르기 시작하고 있다. 장내 세균총이 균형 상태이면 건강에 문제가 없으나 불균형 상태가 되면 건강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이것은 장내 세균총을 유익균과 유해균, 중간균으로 나누어 보는 관점에서 진일보한 것이다. 현재 장내 세균총을 세 종류로 나누는 것은 미생물을 정적인 존재로 보는 시각에 머물고 있어 이들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지 아닌지에 대한 정보가 없다. 그러나 균형과 불균형으로 나누어 보는 것은 세균총 전체의 상태를 설명하는 것이어서 이들의 동적 상태에 대한 상황 정보를 제공한다.
VIII. 인류가 미생물을 산업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처음은 양조와 같은 발효 분야이다. 오늘날에도 식품 분야에서 미생물은 널리 활용되고 있으며 복제약품 제조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들 분야에서는 대부분 단일 미생물, 혹은 두 세 가지 정도의 미생물에 의존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미생물을 이용하여 환경 오염이나 폐기물을 처리하는 방법도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으나 특정 유기물을 분해하는 능력이 있는 단일 미생물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미생물로 처리하기 어려운 산업폐기물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소각 처리만으로는 어려운 상황에 도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재생활용이 어려운 오염 플라스틱 폐기물, 방사성 폐기물, 난 분해성 독성 폐기물, 소각이 어려운 음식물 쓰레기 등은 별다른 방책이 없는 상태이다. 이들을 미생물로 깨끗이 처리할 수 있다면 가장 자연적이고도 효율적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여러 연구자들이 최상의 미생물을 찾고자 많은 노력을 경주하고 있으나 한계에 부딪치고 있다.
IX. 만약 이러한 폐기물들을 단일 미생물이 아니라 강력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복합미생물을 활용하여 처리한다면 어떻게 될까? 복합미생물은 강력한 생존력을 지니고 있어 단일 미생물로는 기대하기 힘들었던 기능을 가지면서도 극한 환경에서 견디어내는 능력이 뛰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그 활용 분야는 매우 넓을 것이다. 실제로 최근의 연구결과들을 보면 이러한 가능성이 확인되고 있다. 최근에 우크라이나 및 러시아에서 복합미생물로 방사성 폐기물을 처리한 결과 방사성 세슘이 무해한 바륨으로 바뀌면서 방사선 세기가 6개월 만에 반으로 줄어드는 극적인 결과가 보고되었다. 국내에서도 방사성 세슘의 방사선 세기가 반감기보다 빠르게 감소하는 실험적 결과가 얻어졌다. 또한 대량의 음식물 쓰레기만 아니라 동물 사체, 오염된 플라스틱 등의 난 분해성 폐기물도 손쉽게 빠른 속도로 처리가 가능하다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앞으로 공존과 공생의 원리에 따라 제조된 복합미생물을 있는 그대로 기능에 따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방사성 폐기물뿐만 아니라 처리하기 어려운 각종 산업폐기물도 손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2020. 11. 14.) 한국 뉴욕 주립대 방건웅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