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미생물로 산업폐기물을 처리하자

I. 현대과학의 시초는 17세기에 있었던 과학혁명의 시대로서 발생지는 유럽이다. 동양도 과학기술이라고 여겨질 수 있는 전통적 기반이 있었으며 실제로 종이, 화약, 나침반, 자기, 비단 등과 같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제조기술에 기반을 둔 산물들이 처음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증기기관으로 대표되는 산업혁명과 같은 정도의 혁명적 발전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먼저 제조업을 일구었음에도 퀀텀 점프를 이루지 못한 원인은 무엇일까?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대상을 탐구하는 방법론, 즉 연구의 효율성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II. “과학”(科學)이라는 단어는 동양에서 서양의 학문을 가장 앞서 도입한 일본에서 “science”를 번역하면서 새로이 만들어낸 단어로서 와세이칸고[和製漢語]이다. “science”는 라틴어의 “scientia”에서 온 것인데 본디 지식(knowledge)”을 의미한다. 오늘날 통용되는 사이언스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공통적으로 관찰실험을 통해 체계적으로 탐색하는 지적 활동을 의미한다고 설명되어 있다. 여기에서 관찰과 실험의 방법론으로 등장하는 것이 환원론으로서 관찰 대상을 구성 요소별로 쪼개고 나누어서 탐색하는 것이 특징이다. “Science”라는 단어를 일본에서 처음 번역할 때 이 의미에 따라 분야별로 나누어진[] 지식, 즉 학문[]이라는 뜻으로 과학이라고 번역한 것으로 추정된다.

  III. 현대과학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바로 연구 방법론에서 환원론적 방법[reductionism]으로 사물을 탐색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연구한다면 자동차를 각 부속으로 해체하여 각각의 기능을 분석하고 이해한 다음에 그 부속 별로 얻어진 지식을 모아 자동차 전체를 이해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자연을 궁구하여 새로운 지식이 급속도로 쌓이기 시작한 과학혁명의 시대인 17세기 이후 과학기술이 혁신적으로 발전하면서 18세기 산업혁명의 기반이 되었다. 오늘날의 놀라운 현대 과학문명도 그 연장선 상에 있으며 이제는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만화나 영화에서만 보던 인공지능이 실린 로봇이 등장하는 것을 직접 목도하는 시대가 되었다.

  IV. 환원론적 접근법은 의학과 생물학에서도 동일하게 채택되었다. 질병의 원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파스퇴르가 질병의 원인이 세균이라고 하는 세균병인설을 주장한 이후, 이 이론이 의학계의 주류가 되었고 세균을 없애면 질병이 치료될 것이란 발상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게 되었는데 이것은 국소적인 원인만 제거하면 치료가 될 것이라는 환원론적 사고방식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세균병인설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이후 급격하게 발전한 것이 세균을 억제하는 항생제를 시초로 하는 제약산업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위급한 상황에서 생명을 건지게 되고 수명이 늘어나게 된 것은 서양의학의 눈부신 발전에서 오는 혜택에 기인한 것이 크다. 동양의학은 이와 달리 질병의 원인이 되는 세균의 개념보다도 면역력이 떨어지면, 즉 건강이 약화 되면 질병에 걸린다는 개념에서 출발하여 발달 되었다는 점이 다르다. 서양의 의학이 국소적인 현상에 집중한다면 동양의 의학은 전체를 종합적으로 본다는 차이가 있어 서로 장단점이 있고 상호 보완적이다.

  V. 그러나 환원론적 연구방법을 적용하는 데 있어 생물적 존재와 자동차와 같은 물리적 존재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물리적 존재의 경우, 1 + 1 = 2가 되기 때문에 환원론적 접근법으로 탐색을 하여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생물적 존재는 1 + 1을 더하면 2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보다 더 큰 새로운 것이 되기 때문에 환원론적 접근법으로 생명현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 세포들이 모여서 장기가 될 때 그 이전에는 없었던 장기로서의 새로운 기능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자갈들을 모아 놓으면 자갈 더미에 지나지 않지만, 세포들이 모여서 연결되면 새로운 기능이 생성된다. 생물학에서는 이를 창발“(創發)이라고 표현한다. 생명현상을 이해하고자 연구 대상을 분해하는 순간, 창발된 새로운 현상은 사라지기 때문에 환원론적 접근 방법으로 생명체를 연구하기는 쉽지 않다. 달리 말하여 생명현상은 세포들이 이루어내는 합창과 같은 동적 현상이기 때문에 해체되는 순간 멈추게 된다.

  VI. 현대과학은 아직도 환원론적 접근 방법이 주를 이루고 있다. 달리 말하여 연구 대상을 기계적 존재로 이해하고 정적인 대상으로 보는 것과 같다. 이러한 개념에 기초를 둔 분류와 방법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분야가 특히 미생물 분야이다. 놀랍게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미생물은 그 종류가 매우 많으며 인간은 고작 2 % 정도 밖에 그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머지는 어떤 종인지, 어떻게 배양을 해야 하는지, 유전자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이다. 이러한 상황이어서 미생물에 대한 연구와 응용은 여전히 환원론적 접근에 머물고 있으며 자연계에서 발견된 미생물들은 일차적으로 특정 미생물을 분리, 배양하여 동정하는 절차를 거치게 된다. 이 방법으로 군락을 구성하는 미생물 개체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는 있어도 군락 전체에 대한 종합적인 지식은 얻을 수가 없다. 여러 종류의 미생물들이 공존하면서 군락을 이룰 때 어떤 새로운 기능이 있는지 등에 대한 정보를 확보하려면 군락 자체 그대로 두고 연구를 하여야 하는데 환원론적 방법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VII. 자연계에서 발견되는 미생물들은 수천수만 종의 미생물들이 서로 균형을 이루면서 공존하는 복합미생물의 형태로 존재한다.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예는 인체의 장에 있는 세균총(microbiome)을 들 수 있다. 공존하는 미생물 무리는 생명체와 같은 특정 형상을 이루지 않았다뿐이지 나름대로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어 하나의 생명체와 유사하다. 따라서 복합미생물은 단일 미생물종 보다 강력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어 주위 환경의 변화에 잘 적응하고 전체적인 효능도 강력하다. 이와 같은 특성에 주목한 학자들은 최근 공존하는 상태의 세균총을 그 상태에 따라 균형”(symbiosis)불균형”(dybiosis)으로 나누어 부르기 시작하고 있다. 장내 세균총이 균형 상태이면 건강에 문제가 없으나 불균형 상태가 되면 건강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이것은 장내 세균총을 유익균과 유해균, 중간균으로 나누어 보는 관점에서 진일보한 것이다. 현재 장내 세균총을 세 종류로 나누는 것은 미생물을 정적인 존재로 보는 시각에 머물고 있어 이들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지 아닌지에 대한 정보가 없다. 그러나 균형과 불균형으로 나누어 보는 것은 세균총 전체의 상태를 설명하는 것이어서 이들의 동적 상태에 대한 상황 정보를 제공한다.

 VIII. 인류가 미생물을 산업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처음은 양조와 같은 발효 분야이다. 오늘날에도 식품 분야에서 미생물은 널리 활용되고 있으며 복제약품 제조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들 분야에서는 대부분 단일 미생물, 혹은 두 세 가지 정도의 미생물에 의존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미생물을 이용하여 환경 오염이나 폐기물을 처리하는 방법도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으나 특정 유기물을 분해하는 능력이 있는 단일 미생물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미생물로 처리하기 어려운 산업폐기물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소각 처리만으로는 어려운 상황에 도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재생활용이 어려운 오염 플라스틱 폐기물, 방사성 폐기물, 난 분해성 독성 폐기물, 소각이 어려운 음식물 쓰레기 등은 별다른 방책이 없는 상태이다. 이들을 미생물로 깨끗이 처리할 수 있다면 가장 자연적이고도 효율적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여러 연구자들이 최상의 미생물을 찾고자 많은 노력을 경주하고 있으나 한계에 부딪치고 있다.

 IX. 만약 이러한 폐기물들을 단일 미생물이 아니라 강력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복합미생물을 활용하여 처리한다면 어떻게 될까? 복합미생물은 강력한 생존력을 지니고 있어 단일 미생물로는 기대하기 힘들었던 기능을 가지면서도 극한 환경에서 견디어내는 능력이 뛰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그 활용 분야는 매우 넓을 것이다. 실제로 최근의 연구결과들을 보면 이러한 가능성이 확인되고 있다. 최근에 우크라이나 및 러시아에서 복합미생물로 방사성 폐기물을 처리한 결과 방사성 세슘이 무해한 바륨으로 바뀌면서 방사선 세기가 6개월 만에 반으로 줄어드는 극적인 결과가 보고되었다. 국내에서도 방사성 세슘의 방사선 세기가 반감기보다 빠르게 감소하는 실험적 결과가 얻어졌다. 또한 대량의 음식물 쓰레기만 아니라 동물 사체, 오염된 플라스틱 등의 난 분해성 폐기물도 손쉽게 빠른 속도로 처리가 가능하다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앞으로 공존과 공생의 원리에 따라 제조된 복합미생물을 있는 그대로 기능에 따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방사성 폐기물뿐만 아니라 처리하기 어려운 각종 산업폐기물도 손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2020. 11. 14.) 한국 뉴욕 주립대 방건웅 교수